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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 난중일기 정유일기 1597년 9월 15일 맑음. 조수를 타고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겼다. 벽파정 뒤에 명량이 있는데 수가 적은 수군이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기를, "병법에 이르기를 '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 고 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김이 있다면, 즉시 군율을 적용하여 조금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재삼 엄중히 약속했다. 출처: 난중일기 유적편, 이순신 지음, 노승석 옮김, 도서출판 여해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거늘 난중일기 정유일기 1597년 10월 14일 맑음.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하는데, 아직 봉함을 열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마음이 조급해지고 어지러웠다. 대충 겉봉을 펴서 열이 쓴 글씨를 보니, 겉면에 통곡 두글자가 쓰여 있었다. 마음으로 면이 전사했음을 알게 되어 나도 모르게 간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처럼 인자하지 못한 것인가.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어지하여 이치에 어긋난 것인가. 천지가 어둡고 밝은 해조차도 빛이 바랬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늘 버리고 어디로 간 것이냐. 영특한 기질이 남달라서 하늘이 세상에 남겨 두지 않는 것인가.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이제 ..
사냥이 시작되었다. "수사가 아니라 사냥이 시작되었다. 수십 개의 칼날이 쑤시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가족의 살과 뼈가 베이고 끊기고 피가 튀는 모습을 두 눈 뜨고 보아야 하는 절통(切痛)이었다." 출처: 조국의 시간, 조국, 한길사
부디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야 한다 난중일기, 갑오일기 갑오년 1594년 1월 11일 흐리나 비는 오지 않았다. 아침에 어머니를 뵈려고 배를 타고 바람을 따라 바로 고음천에 도착하였다. 남의길과 윤사행이 조카 분과 함께 갔다. 어머니께 가서 배알하려하니 어머니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으셨다. 큰 소리를 내니 놀라서 깨어 일어나셨다. 숨을 가쁘게 쉬시어 해가 서산에 이른 듯하니 오직 감춰진 눈물이 흘러내릴뿐이다. 그러나 말씀하시는데는 착오가 없으셨다. 적을 토벌하는 일이 급하여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이 날 저녁에 소수약의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1월 12일 맑음 아침식사 후에 어머니께 하직을 고하니, "잘 가거라. 부디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야 한다."고 분부하여 두세번 타이르시고, 조금도 헤어지는 심정으로 탄식하지 않으셨다. ..
헛일 헛일 들깨 한 주먹 뿌렸더니 촉이 잘 텄더냐안 파릇파릇 이파리 달고 잘 크드만은 저번 태풍이 때려부러서 자빠졌는디 그래도 들깨나무 밑둥이 살아서 졸랑졸랑 열매를 맺었드라 시월 볕에 종자라도 받으려고 낫에도 알 걸리는 쬐끄만 것을 벼서 보자기에 널어놓고 아까 낮에 밥 한술 먹을라고 집에 들어 왔더니만 갭자기 이상허게 쏙쏙이 바람이 불드라 다리도 아프고 가기 싫더라만 내 안 가봤더냐 오메! 들깨고 뭣이고 보자기까정 날아가 버렸시야 도랑 건너가서 보자기는 주워 왔다만은 하! 우섭구나 야 니 들깨 한 줌 다구 내명년에 또 심거 볼랑께 출처: 농촌 어머니의 마음, 김순복, 도서출판 황금알
콩의 반란 콩의 반란 밭 이백 평에서 콩 두 가마니 얻었다 콩 한 되에 오천 원이면 사십 킬로에 십 만원이다 석 달 동안 농사지어 이십 만원 벌었다 호미 하나 들고 품 들러 가면 오만 원 받는다 팔순 다 된 할머니도 하루에 오만 원 번다 일 할 사람이 없어 논밭에서 아우성이다 자식들 키워 도시로 보내느라 고생하고 노인들은 콩 팔아서 젊은 자식에게 돈 보내고 동트기 전에 품 들러 나간다 콩으로 메주 쑤고 청국장 띄우고 콩나물 기르고 두부 만들어 사람들 먹였는데 알알이 땀방울 같은 콩의 얼굴이 샛노래지다 출처: 농촌 어머니의 마음, 김순복, 도서출판 황금알
우리들의 시간 우리들의 시간 목에 힘주다 보면 문틀에 머리 부딪혀 혹이 생긴다 우리는 아픈 생각만 하지 혹 생긴 연유를 모르고 인생을 깨닫지 못한다 낮추어도 낮추어도 우리는 죄가 많다 뽐내어본들 도로무익(徒勞無益) 시간이 너무 아깝구나 출처: 우리들의 시간, 박경리, 나남출판
기다림 이제는 누가 와야 한다 산은 무너져 가고 강은 막혀 썩고 있다 누가 와서 산을 제자리에 놔두고 강물도 걸러내고 터주어야 한다 물에는 물고기 살게 하고 하늘에 새들 날으게 하고 들판에 짐승 뛰놀게 하고 草木과 나비와 뭇 벌레 모두 어우러져 열매 맺게 하고 우리들 머리털이 빠지기 전에 우리들 손톱 발톱 빠지기 전에 뼈가 무르고 살이 썩기 전에 정다운 것들 수천 년 함께 살아온 것 다 떠나기 전에 누가 와야 한다 출처: 우리들의 시간, 박경리, 나남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