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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거늘

난중일기

정유일기 1597년

 

10월 14일 맑음.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하는데,

아직 봉함을 열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마음이 조급해지고 어지러웠다.

대충 겉봉을 펴서 열이 쓴 글씨를 보니, 

겉면에 통곡 두글자가 쓰여 있었다. 

마음으로 면이 전사했음을 알게 되어 나도 모르게 간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처럼 인자하지 못한 것인가.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어지하여 이치에 어긋난 것인가.

천지가 어둡고 밝은 해조차도 빛이 바랬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늘 버리고 어디로 간 것이냐.

영특한 기질이 남달라서 하늘이 세상에 남겨 두지 않는 것인가.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이제 내가 세상에서 끝내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 

너를 따라 죽어 지하에서 함께 지내고 함께 울고 싶건만,

네 형, 네 누이, 네 어미도 역시 의지할 곳이 없어 아직은 참고 연명한다마는

마음이 죽고 형상만 남은 채 부르짖어 통곡할 따름이다.

 

 

 

출처: 난중일기 유적편, 이순신 지음, 노승석 옮김, 도서출판 여해